나는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에, 어떤 모습의 나 자신일지라도 항상 그 길을 걸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비록 황망하고도 부질없는 선택의 연속이었을지라도.
후회하진 않는다. 마지막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어 버렸을 때,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나를 보았을 때, 나에게 유일한 의지가 되었던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후회할 수 없고,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 어찌보면 후회하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도, '후회할 수 없다'라고 표현하는 자체 역시 위선일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인간은 지독히 일관적이게도 비겁한 존재이니까.

나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미래의 어떤 나도, 또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같은 선택을 필연적으로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미래에 이렇게 말해겠지. 어쩔 수 없었노라고.
과거의 서글픔을 또다시 맛보면서, 또다시 숙연해지고, 안타까움에 몸부림 칠 것이다.
어찌보면 멍청한 반복이고, 악순환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고, 공유하고, 그것을 유지해 나가다가, 결국은 또 각각 혼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전부, 하나같이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잡설 l 2009/01/17 01:19
항상 그와 나 사이엔 신뢰가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존하는 사이었을 따름이다.
그가 있기에 내가 있고, 서로의 생존에 줄을 대주는 그런 관계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 관계는 매우 부적절하고, 반사회적이며, 폐쇄적일수도 있다.
관계가 폐쇄적이라는 말은 어느정도의 모순을 낳기도 하지만, 비교적 정확한 표현이다.



 
그는 태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나의 산물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나의 결과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난해한 존재는 더더욱 아니지만, 언어로써 규정하기 힘든 건 사실이다.
맨처음 그에게 구속당할 당시, 나는 나 자체가 그 인줄만 알았다.
나와 그를 다르게 인식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 시기에 나의 행동은 어떤 측의 자유의지를 따랐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내가 그를 처음 인식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특별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나와 밀접하게 존재해 있었지만, 내가 그를 어느순간 알아차리게 된 것은, 그가 처음에 비해 어느정도는 변질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는 나를 충동질 했다. 멀쩡한 길을 돌아가게 만들고, 이성적인 사고를 방해했으며, 얼마남지 않은 행복을 배팅하여 파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멀리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에 대한 나의 신뢰가 나를 지켜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생각하지만 그는 나의 파멸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느순간, 그 존재는 나에게 방해라는 것을 알았다. 주위에서 모든 사람들이 떠들어댔지만, 정작 나의 사고에 영향을 끼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난 그를 털어놓았다.
최대한 말끔하게 그의 흔적을 지웠다.
그 시도는 힘들었지만, 꽤 성공적이었다.
앞이 똑바로 보이기 시작하고, 나도 그 길을 단지 두 발로 걷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똑바로 세상을 본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껏 힘들게 털었던 그 존재는 어느곳에나, 누구에게나 달라붙어 있었다.
비단 나만이 아니었다, 내가 낳은 존재가 아니었다.
수 많은 그, 아니 그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몸서리가 쳐졌다.
분류없음 l 2008/12/2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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